ИСКРА’s RedEye

변명……(?)

In etc on 2004/03/03 at 22:27

‘예정조화설’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옛날 옛적에 라이프니츠라는 사람이 살았더랩니다.
이 사람은 세계가 ‘단자’라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언뜻 보면 ‘원자’란 놈과 비스므레 하지만, 이 단자라는 놈은 놀랍게도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데, 그건 영혼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라나…
아무튼 단자는 자립해 있는 실체이기 때문에 “무엇이 들어가거나 나오거나 할 수 있는 창문이 없다”고 합니다. 따라서 단자들은 서로 독립적인 개별자입니다.

그런데 단자는 세계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이므로 서로 만나서 세계를 구성해야 하는 막중한 사명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치명적인 모순이 생깁니다.
이 ‘창 없는 단자’들은 하나 하나가 외부로부터 독립적인, 닫혀있는 실체이기 때문에 지네끼리도 소통이 불가능합니다. 이러니 A라는 단자가 세계의 구성이라는 구국의 결단을 내린다 한들 다른 단자들이 무슨 수로 거기에 호응한단 말입니까.

당대의 사상가 씩이나 되는 라이프니츠가 이 점을 못 본 척 넘어갈 리는 없지요.
그래서 그는 또한 단자가 ‘우주의 살아있는 거울’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외부에 대해 닫혀있는 개별자인 단자가 서로 모여서 뭔가 뚝딱뚝닥 쿵짝쿵짝 하려면, 그 안에 이미 세계 전체를 포괄하고 있어서 그 개별성에도 불구하고 애초에 서로 일치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상의 모든 단자들이 일치단결하여, 스스로의 내부에서 이미 예정된 조화를 향해 손맞잡고 내달린다는 것이 바로 예정조화설의 전모…는 아니고 대강, 내지는 내 맘대로 요약입니다.

지금와서는 이게 뭔 소리냐 할 수 있습니다만, 라이프니츠의 이러한 이론은 개별자, 개인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근대 자유주의의 기초가 된 무진장 중요한 사상입니다.
이 사상의 경제학적 표현이 바로 ‘자유방임주의’, 후세의 ‘신고전주의’…유행에 따르자면 ‘신자유주의’라는 놈입니다. 뭐, 잘 알고들 있다시피 시장은 손이 하나 있는데, 이게 아주 강력하고 정의로울 뿐만 아니라 마음이 순수하지 못한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기까지 하여…걍 냅두면 알아서 이상적인 균형상태를 만들어준다는 이야기죠. 놀랍지 않습니까?

이제 현실을 봅시다.

인류 사회의 구성 요소인 개인은 실제론 평등하지 않고, 더군다나 애초부터 세계를 품에 안고 일치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뭐, 더러 그런 신비한 체험을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지만, 평범 그 자체인 나에게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일 뿐이니 논외…)

민주주의는 평등한 개인들을 전제로 하여 합의를 이루어나가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이렇게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개인의 자유를 법적, 제도적으로 제한할 수밖에 없지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라는 것은 그저 허상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게다가 자본주의, 경쟁 사회에서 불평등한 개인들의 자유는 ‘못 가진 자’, ‘약자’에겐 ‘굶어죽을 자유’가 되어버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유주의, 평등, 민주주의…
근대 사회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자유, 민주, 평등 따위는 현실 속에서는 서로 모순되기도 하고, 때에 따라 적대적이기까지 합니다.
‘예정조화’라… 차라리 저 하늘에 용가리가 산다고 하지…ㅡㅡ;
하기야 라이프니츠 당시의 철학이라는 것이 이제 막 신학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던 때였으니 저런 생각도 가능했을 것 같습니다.

의외로(?) 오늘날에도 이러한 예정조화설은 여전히 암암리에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 경제학 이론들의 배후에 숨어서 말이죠.
더 골때리는건 개별자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이러한 사상이 이율배반적이게도 전체주의, 국가주의와 융합되어 사회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로 널리 유포된다는 사실입니다.
‘자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약속된 이상 사회 건설에 매진하자’, ‘조화와 화합을 저해하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다’…
나치즘과 파시즘이 그랬고, 옛 현실 사회주의가 그랬지요.

지금의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한 편에서는 ‘규제 완화’니, 무슨무슨 ‘합리화’니 ‘기업의 자율성’이니 마치 자유주의의 화신이라도 강림한 듯 떠들고 있지만, 다른 한 편에선 ‘국가경쟁력 강화’,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자’… 이 따위 ‘천 삽 뜨고 허리펴기’하고 다를 바 없는 앞뒤없는 슬로건이 각종 매체를 점령하고 있죠.

글이 길어지니 이제 슬슬 마무리를 하지요. 좀 엉뚱한 결론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저는 개인의 개성과 자유를 존중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타인의 간섭을 배제하는 신성불가침의 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또한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서로를 존중하는 척 하며 추상적, 피상적 교류를 반복한다 해서 좋은 세상, 밝은 내일(?)이 온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아, 그렇다고 수많은 충돌과 어려운 과정을 거쳐 형성되는 공동체의 합의에 돌을 던지는 또라이짓을 하겠단 얘기는 아닙니다. ^^; 오히려 그러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규칙들이라면 그것이야말로 합리적이고,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겠지요.

아무튼 그리하야 저는 이 사회에 실천적으로 개입하려 하고, 타인의 생각과 주장에 딴지를 걸고, 이 blog라는 소통 행위에 어줍잖게 뛰어들려고 합니다.
(결국 이 말을 하려고 딱히 새로울 것도 없는 내용으로 이 길고도 골치아픈 글을 쓴거냐?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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