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을 잘 하는 방법 하나.
그건 바로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진실의 일부분만…

여보게, 이론이란 모두 회색빛일세. 푸른 건 인생의 황금나무지.

정확히 어딘지 기억나진 않지만 학교 다닐 때 자주 사보던 모 출판사의 사회과학 서적 맨 앞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던 말이다. 처음엔 그냥 오늘의 명언 쯤 되나보다 했는데, 알고보니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로 변장하고 순진한 학생을 꼬시는 대사였다.

이 말을 풀어서 얘기하자면 이런거다.

‘진리 탐구고 나발이고 다 쓸데없는 짓이야.
그거 하면 밥이 나오냐 쌀이 나오냐.
젊을 때 즐겨. 화무는 십일홍이고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여.
지금 이 순간을 즐기란 말이야. 오, 카르페 디엠!’

맞는 얘기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명색이 악마인데 사람을 올바른 방향으로 계도할 리는 없잖아?

과거는 지나간 시간, 미래는 다가올 시간, 그럼 현재는?

‘지금 이 순간’이라고 말해보라. 그 말은 정확히 어느 시점을 가리킬까? ‘순간’이란 단어를 발음한 시점? 아니면 말하려고 마음먹은 시점?
어느 경우이든 엄밀히 말하자면 약간의 시간은 경과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현재’ 또는 ‘지금’이라고 부르는 시점은 ‘이 때다’라고 딱 잘라 정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헤겔에 따르면 현재는 다시 두 가지 계기로 나뉜다. 그에게 현재는 과거와 미래가 변증법적으로 통일되어 있는 것이다.

“구체적 현재는 과거의 결과이고 미래를 배태하고 있다.”

각각의 계기는 다른 것으로부터 존재를 부여받고 다른 것의 존재를 가능케 한다. 이렇게 보자면 과거와 현재가 없는 미래는 몽상이고, 현재와 미래가 없는 과거는 집착이며, 과거와 미래가 없는 현재는 허무일 뿐이다.(당연한 얘긴가?)

끝자락에 나오지만 메피스토펠레스의 본심은 이런거다.

“지나갔다는 것과 전혀 없다는 것은 완전히 같은 것이다!
영원한 창조란 도대체 무엇이냐!
창조된 것은 무(無) 속으로 휩쓸려가게 마련이다!
‘지나가 버렸다!’ – 여기에 무슨 뜻이 있지?
그야말로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런데도 마치 무엇이 있었던 양 뱅뱅 맴돌고 있다.
나는 오히려 영원한 허무가 좋단 말이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다.

파우스트 박사는 존경받는 대학자이다. 그러나 온갖 학문을 다 섭렵하고도 정작 얻은 결론은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공부할 필요 없단다. 얼씨구나~ ^^;) 진리를 알기 위하여 마법(과연 대학자!)을 사용하여 땅의 정령을 불러내기까지 하지만 압도적인 공포에 짓눌려 결국 실패하고 만다.
그리하야…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을 맺게 되는데…

여자도 꼬시고, 광란의 파티도 즐겨보고, 올림푸스 인증 그리스 최고 미녀 헬레나하고 결혼도 해보고, 왕 노릇도 해본다.(악마와의 계약…아무래도 이거 남는 장사 아닌가? ㅡㅡ;)

하지만 그는 메피스토펠레스의 기대와는 달리 결코 감각적인 쾌락만을 좇으며 파멸의 길을 걷지 않는다. 끊임없이 자극을 원하는 것은 늘상 따라다니는 허무를 떨쳐내기 위한 것. 허무를 순간적으로 잊기보다는 지속적으로 허무를 이겨내는 삶의 형태를 추구한다.

왜일까? 서두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처럼 착한 인간은 비록 어두운 충동 속에서도 무엇이 올바른 길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일까?
얼어죽을… 그래 그 착한 인간이 악마와 계약을 맺냐?

태초에 행위가 있었느니라!

이야기의 초반에 파우스트가 요한복음 1장 1절을 독일어로 어떻게 옮길까 고심하다 위와 같이 하고 기뻐하는 장면이 나온다.1 (짐작컨대 문제의 단어는 λόγος일게다.) 이게 “파우스트” 전반을 꿰뚫는 중요한 대목이다.(물론 내 생각일 뿐이다.)
이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골치아프지만 다시 헤겔로 돌아가보자. (쓰기 전에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했는데도 머리가 아프다. 헤겔은 역시 해결이 안된다.)

헤겔은 ‘자연적 시간’과 ‘역사적 시간’을 구분한다.(자세한건 묻지 마라. 비밀이다. ^^;) ‘자연적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미래로 흘러가는 시간이다. 그런데 ‘역사적 시간’이란 놈은 좀 다르다. 이건 칸트가 생각하듯이 그저 ‘선험적 직관의 형식’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물이 움직이고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운동이 시간 자체를 만들어낸다고 하는 것이다.

저기 돌이 굴러오고 있다. 즉, 돌이 ‘운동’하고 있다.
자, 시간을 멈춰보자. 얍! 멈췄지?
당근 뻥이다. 개념적으로 시간은 무한히 쪼개질 수 있기 때문에 정지된 순간을 포착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운동이란 정지된 순간의 연속이 아니라 운동과 정지가 통일되어 있는 것이라고 해야 한다. 바꿔 말하자면 움직이고 있는 물체는 어떤 순간에 어느 한 지점에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 ‘있음과 없음의 변증법적 통일’이 운동이다. 그리고 이러한 운동이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시간이다.

뭐, 정확하진 않다. 기억도 잘 안날 뿐더러…(내 멋대로 이해라고 하는게 사실에 가깝지 않을까나? ^^;) 헤겔이 얘기한 건 ‘개념’의 운동이었다. 이걸 ‘사물’의 운동으로 살짝 바꿔치기 한 건 엥겔스였다.

어쨌든간에 이렇게 모든 것은 ‘있음과 없음’의 모순, 다시 말해 ‘운동’ 속에서만 스스로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움직이는 것은 존재의 조건이고, 존재의 증명이다.

이렇게 보면 허무라는 것은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도 같다. 메피스토펠레스(허무)는 인간이 존재하기 위하여 필요불가결한 것은 아닐까? 아니, 그것이 인간의 일부는 아닐까?

일시적 쾌락이 허무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것이 영원히 지속되길(정지하길) 바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정지하지 않고 운동, 변화하면서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보장(또는 근거)을 추구하게 된다. 인생의 목표이든, 종교적 신념이든, 진보에의 믿음이든…

아무튼 그리하여 파우스트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지혜의 마지막 결론은 이렇다.
자유도 생명도 날마다 싸워서 얻는 자만이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파우스트 선수,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간다.
벼랑 끝으로…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앗! X됐다. ㅡㅡ;
저게 바로 악마와의 계약에서 키워드였다. 저 말을 하는 순간 파우스트의 영혼은 지옥의 소유…뭐 그런거였다.
그런데 그 말이 뭐가 어때서?

앞서 말했듯이 존재가 시간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운동, 변화가 존재이다.

멈추어라 – 정지는 죽음, 허무, 비존재이다.
너 정말 아름답구나! – 아름다우려면 존재해야, 다시 말해 운동, 변화해야 한다.

결국 파우스트는 이 말을 하는 순간 모순에 빠지게 되는거다.

저 대사는 지가 만든 나라를 바라보며 내뱉은 거다. ‘우리는 역사 발전의 최고 형태, 모순이 없는 사회에 도달했다’ 라고 천명하고 나서 몰락의 길을 걸어간 나라들이 20세기에도 꽤 있었다.

그런데 이 선수 갑자기 왜 이런 뻘짓거리를 한 걸까?
그야 그냥 이렇게 잘 먹고 잘 살았다…라고 하면 얘기가 진행이 안되니깐…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올리도다.

말 한 마디 잘못해서 지옥의 유황불에 불태워질 위기에 처한 파우스트를 구원하는 것은 다름아닌 그레트헨2의 사랑이다.
과연 평생을 로맨스에 빠져 살다시피 하고 칠십대에 열아홉살의 처녀와 열애에 빠지는 노익장을 보여준 절륜한 정력의 소유자 괴테 선생 답다고나 할까?

하여간 그녀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한 감동먹으신 하나님께서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 양자간에 자발적인 의사로 성립된 합법적인 계약을 기냥 파기해버리신다. 국가보안법을 적용했나보다. 역시 신은 신이다!(엄밀히 말해 악마와의 계약은 민법 제103조3에 의해 무효다. ^^;)

괴테 선생, 잘 나가다 막판에 와서 뜬금없어진다.
그래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고작 지고지순한 사랑이냐?
하기야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아무리 대문호라도 그 이상을 요구하는건 좀 무리일 수도 있겠다.

고전은 상상력과 감수성의 보고이다.
헤겔까지 들먹이며 거창하게 썼지만 이런거 생각 안해도 읽을수록 새롭다. 사람에 따라 ‘자연을 정복하는 합리주의적 이성에 대한 찬양’이라든가 ‘모든 것을 포용하시는 주님의 사랑’ 따위로 다양하게 해석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거 꽤 재미있다.

(사족- 여기 인용한 것 이외에도 “파우스트”에는 멋진 말들이 많다. 이를테면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이런거. 역시 고전은 읽어두면 어디 가서 잘난척하기 딱 좋…. ^^;
심지어는 이런 말까지 있다.
청추~운을 돌~려다~오~
……..정말이다.)

  1. 개역한글, 개역개정에서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공동번역에서는 한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의 “성경”에서는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로 옮기고 있다. []
  2. 파우스트가 악마와 계약을 맺은 뒤 맨 처음 꼬신 여자 []
  3. 민법 제103조 (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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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sponses to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정서웅 옮김, "파우스트", 민음사

  1. mr.dal 님의 말:

    유익한 내용이에요 -0-/

  2. 오창엽 님의 말:

    그 출판사의 이름은 녹두입니다. 99년에 제가 쓴 어느 칼럼 한 토막입니다.
    80년대 대표적 사회과학출판사 녹두의 [세계철학사]를 한 장 넘기면 “모든 理論은 灰色이며 오직 永遠한 것은 저 푸른 生命의 나무이다”라는 경구가 나타난다. 책은 십년 전에 읽었으나 이것의 연원을 알게 된 것은 겨우 일년 전이다.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펠레스는 학생들을 향하여 “모든 이론은 잿빛이며, 둘레에 무성한 것은 황금나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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