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

두 문화

이른바 지식인 사회에는 고유의 문법이라는게 있다. 부르디외 식으로 말하면 아비투스, 푸코 식으로 하자면 담론이 되겠다. 그냥 해본 소리다. 잘 모른다.;;

대학 새내기 시절, 철학 입문이란 수업이 있었다. 이 수업 첫 과제가 글쎄 화이트헤드의 “과학과 근대세계”를 읽고 레포트를 작성하는 거였다. 진짜 이거 읽다가 머리가 하얗게 세는 줄 알았다.;;

어쨌든 담당 교수의 추천 도서 중 C.P. 스노우의 “두 문화와 과학혁명”이라는 책이 있었는데,1 이 책에 의하면 학문의 분야가 지나치게 세분화되고 전문화되어서 각 분야의 문화와 언어가 서로 크게 달라진다고 한다. 특히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 사이에는 넘기 힘든 벽이 존재해서 토론은 고사하고 의사소통조차 어려워진다고 한다.

사실이 그렇다. 이전의 소칼 논쟁에서 인문사회과학자들과 자연과학자들이 서로 딴 소리하는 걸 보거나,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이공계 논쟁에서 – 주된 논점은 차치하고 – 인문사회과학도들과 자연과학도들의 (감정적) 대립에서 드러나듯이 둘 사이에는 공통의 기반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세상이 각 분야별로 독립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학문이라는 것이 관념의 자기운동이 아니라 현실과의 치열한 투쟁 속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은 상호 소통해야 한다.

사회XX학?

세상 일이 다 그렇듯이 의도가 좋다고 결과 또한 좋은 것은 아니다. 인문사회과학이 자의적으로 자연과학의 개념들을 끌어다 쓴다거나 자연과학의 법칙들로 사회를 즉각적으로 설명하려 드는 경우가 그렇다.

전자는 포스트 어쩌구이즘 하는것들이고, 후자는 사회 저쩌구학이라는 류의 것들이다. 개인적으로는 전자보다 후자가 더욱 마음에 들지 않는데, 전자야 뭐 나름의 성과도 있지만 우선 당췌 뭔 소린지 알아듣기가 힘들어서 별 생각이 없는데, 후자는 논리적으로야 어떻든지, 참으로 단순 명료해 보여서 훨씬 쉽게, 광범위한 (악)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도 어찌보면 그런 류의 주장을 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아, 동아출판사는 망했고 이 책은 절판됐다가 범우사하고 세종문화사에서 다시 나왔다.2

환원론과 기계적 결정론

사실 사회생물학이니 사회열역학이니 하는 것들에도 영 쓸모없는 얘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연의 물리적 법칙이 인간과 사회를 제약하는 것은 사실이기도 하고, 또 인간과 사회에 접근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유의미하다. 이를테면 이 책에서 리프킨이 이야기하는 재생불가능한 에너지원에 의존하는 사회 구조에 대한 경고라든지 과학 기술에의 맹신에 대한 비판이나 소비 중심의 사회 체계에 대한 비판 등은 매우 중요한 것들이다.

그러나 물질적 조건이 사회를 제약한다는 말과 특정한 물질적 법칙이 사회 변동을 결정하는 원인이다라는 말은 분명히 다르다. 내가 사회 어쭈구리학들에 대해 가지는 불만의 지점은 바로 여기다. 뉴턴 류의 기계적 결정론을 비판하면서 엔트로피 법칙이 역사 발전을 일으켰다느니 하고 물리 법칙이 사회를 기계적으로 결정짓는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이렇게 물리 법칙과 사회 변동을 기계적으로 연관짓는 것은 환원론의 오류이다. 하긴 자연과학도들 중에서는 환원론이 왜 나쁘냐 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질량 보존의 법칙이 사회 변동을 일으켰다는 얘기는 아무래도 넌센스 아닌가?

열역학 제2법칙 –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엔트로피 법칙은 열역학 제2법칙 – 모든 것은 질서있는 상태에서 무질서한 상태로 변화한다 – 의 별칭이다. 우주에는 열린 계3와 닫힌 계4가 있는데, 닫힌 계에서는 엔트로피는 언제나 증가하고, 열린 계에서는 국지적으로 엔트로피가 감소할 수 있으나 우리 우주가 닫힌 계이므로 전체적인 엔트로피는 증가하는 방향으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문명비판가로 알려진 제레미 리프킨은 이 책에서 엔트로피 법칙을 통해 전통적 뉴턴 역학에 기반한 세계관을 비판하고 그것에 의해 이루어진 현대 사회의 무절제한 자원 낭비를 공격한다. 거기까지는 좋다. 여기서 리프킨은 자신의 논리에 보다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 –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 엔트로피 법칙을 사회적 현상의 구석구석까지 ‘동일한 방식으로’ 관철시키려 한다.

생물계에서의 엔트로피 법칙

생물체의 엔트로피가 감소하면 바로 죽음으로 직결되므로 최소한 살아있는 동안에는 엔트로피가 감소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은 엔트로피 법칙에 위배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생물체는 열린 계라서 외부와 물질, 에너지 교환을 하기 때문에 그 기간 중에는 외부의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대가로 스스로의 엔트로피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시킨다고 한다. 이 때 물질계 전체로 보면 엔트로피는 역시 증가하는 방향으로 변화한다. 따라서 이것은 엔트로피 법칙의 위배가 아니다.

하지만 생물의 발생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리프킨은 이미 생물의 엔트로피 유지에 대해서는 열린 계라는 것으로 설명하지만 지구라는 닫힌 계에서의 생물의 출현 – 국지적 엔트로피의 감소 – 에 대해서는 애써 입을 다물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른 설명이 있다. 일리야 프리고진의 비평형 열역학이 바로 그것인데, 비평형 상태에서 국지적으로 엔트로피가 감소하여 무산구조가 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뭔 소리냐고? 그… 글쎄…;; 구체적 내용은 내 이해의 범위를 넘어서니 넘어가자.;; 쉽게 말해 닫힌 계라고 해도 특정 상태에서는 부분적으로는 엔트로피가 감소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이 경우에도 ‘전체적으로’ 엔트로피는 증가하지만 리프킨이 주장과는 달리 닫힌 계에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본문에서 리프킨은 아인슈타인을 비롯해서 자신의 논리를 뒷받침해주는 ‘듯’한 노벨상 수상자들의 이론들을 제시하지만, 이러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한다. 이건 아전인수라고 해야 하나, 잘못된 권위에의 오류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좀… 치사하다.;;

역사 발전에서의 엔트로피 법칙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안드는 부분은 바로 엔트로피 법칙을 역사 발전의 법칙으로 둔갑시키는 부분이다. 사회의 역사는 우리가 보통 생각하듯이 물질적, 기술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기왕에 사용하던 에너지원이 고갈되어서 ‘어쩔 수 없이’ 다른 에너지원으로 대체하는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나무에서 석탄으로, 석탄에서 석유로, 석유에서 원자력으로…

역사를 발전, 혹은 진보의 과정으로 볼 것인가는 좀 다른 문제니 일단 미뤄두자. 그렇더라도 영 찝찝함이 남는다. 우선, 역사 발전이 엔트로피의 증가 – 가용 자원의 고갈로 인해 일어나는 사용하기 쉬운 자원에서 사용하기 어려운 자원으로의 전환 과정이었다면, 보다 사용하기 어려운 자원을 이용한 시기의 물질적 부의 절대량이 어떻게 이전 단계보다 더 많아질 수 있는가?

리프킨은 이런 질문을 교묘히 피해가면서 ‘엔트로피 증가에 대한 에너지 효율은 떨어진다’라고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어이… 질문에 대답하라구…;;

다른 문제점 하나 더 지적하자. 이 책에서도 이야기하듯이 엔트로피 법칙은 닫힌 계와 열린 계에서 달리 적용된다. 예를 들어, 자연과 사회를 ‘지구’라는 하나의 계로 묶어 닫힌 계로 놓았을 때5와 자연과 사회를 물질, 에너지 교환이 이루어지는 두 개의 열린 계로 놓았을 때는 그 적용 방식이 확연히 달라진다. 물론 그렇다고 엔트로피 법칙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 변동에 있어서도 엔트로피 법칙이 자연계와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말할 수는 없게 된다.

리프킨은 이 책에서 엔트로피 법칙이 적용되는 계의 범위를 어떤 때는 전 우주로, 어떤 경우에는 지구로, 또 다른 이야기를 할 때는 사회로 자의적으로 설정하여 모두 동일한 계인 것처럼,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것을 범주 오류라 부른다.

엔트로피 법칙의 한계, 물리 법칙의 한계

엔트로피 법칙은 전체적으로 보아 올바른 법칙이다. 그러나 엔트로피 법칙 뿐만 아니라 다른 물리 법칙들도 인간과 사회를 물질적으로 제약하긴 하지만 그것을 무리하게 즉각적으로 인류 사회에 적용시키려고 하다 보면 환원론의 오류, 기계적 결정론의 오류에 빠지기 십상이다.

사실 본문에 있는 리프킨의 많은 유의미한 주장들은 이렇게 엔트로피 법칙을 오용하지 않고서도 충분히 이야기될 수 있었다. 그런데 굳이 엔트로피 법칙을 무작위로 오용하면서 책 전체를 엄하게 만들어버리고 있다. 뭐, 책 말미에 변명처럼 단서를 달아 놓긴 했지만…

여기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사람은 역시 무리하면 안된다’는 것이… 아닐까?
아님 말구…;;

  1. 내가 읽은 건 1,500원짜리 문고판이었는데, 요즘엔 “두 문화”란 제목으로 양장본으로 나와서 꽤 비싸게 팔더라.;; []
  2. 현재 공식 번역판은 2000년에 세종문화사(세종연구원)에서 얻어 번역한 이창희 역이다. 2008.12.16 []
  3. open system, 외부와 물질, 에너지 교환이 일어남 []
  4. closed system, 외부와 에너지 교환만 일어남 []
  5. 엄밀히 말하면 지구는 ‘열린 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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