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엘 엔데, 한미희 옮김, "모모", 비룡소
10 3 2004 1 Comment
뒷표지를 보면 ‘초등학교 5학년 이상’이라고 써 있다. 하지만 초등학교 5학년짜리 자녀를 가진 사람이 읽어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동화라고 해서 우습게 보면 안 된다. 심오한 철학적 통찰과 난해한 은유들이 가득 담겨…있지는 않지만… 또 알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오즈의 마법사”처럼 비하인드 스토리라도 있을지..;; 아무튼 현실을,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힘있는 이야기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책은 워낙 유명하니 제목이라도 한 번 쯤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테지만
(노래도 있다.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
요즘 사람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누군가 당신의 시간을 훔치고 있다.
살다보면 ‘하는 일 없이 바쁘다’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만난다. 어찌어찌 하다보면 하루가, 일주일이 후딱 지나가 버리고, 뭔가 열심히 하기는 했는데 돌아보면 해놓은 일은 없는 것 같고…마음은 점점 조급해지는데 여유는 없다. 정말 아침형 인간이 되어야 하나?
이 책에 나오는 회색 신사들의 말을 들어보자.
사람이 70세까지 산다고 했을 때 쓸 수 있는 시간은 2,207,520,000초.
잠자는 시간, 식사하는 시간, 일하는 시간, 멍하니 있는 시간…
…따위로 쓰는 시간이 2,207,520,000초.
나머지가 0초!
정말 남는 것 없는 인생이다.
이렇게 살면 안된다. 시간을 초 단위로 조직해서 낭비되는 시간이 없도록, 나중에 내 시간을 좀 더 많이 가질 수 있도록 해야 된다.
….아니, 나는 관둘랜다. 누군가의 얘기처럼 그렇게 살면 나는 죽는다.;;
일을 빨리 끝마친다고 빨리 퇴근해서 자기 시간을 갖는 건 자본주의의 방식이 아니다. 오늘의 목표 매상을 달성했다고 오후 3시에 문을 닫는 상점 주인은 어디에도 없다.
결국 남는 건 삶이 여유롭지 못한 것은 개인의 탓이라는 이데올로기와 노동강도 강화 뿐이다.
‘언제나 없는 거리’의 ‘아무데도 없는 집’
우리는 흔히 ‘~할 시간이 있다/없다’라는 말을 쓴다. 무척 재미있는 표현이다. ‘있다/없다’라는 술어는 기본적으로 존재의 유무를 나타내지만, 소유를 나타내기도 한다.
그런데 과연 시간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 것일까? 아니, ‘있’기는 한 걸까? 어디에?
시간은 운동, 변화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물이 운동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변화를 통해서 시간의 흐름이 생겨난다. 시간은 ‘가지고 있다’가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통해 ‘생성’되는 것이다. ‘시간의 근원’은 ‘언제나 없는 거리’의 ‘아무데도 없는 집’이다.
시간은 삶 속에, 삶은 관계 속에
나의 시간은 내 삶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러니 삶의 확장은 시간의 확장으로, 시간의 확장은 삶의 확장으로 나타나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근면성실이 시간을 확장시키지만 개인의 삶을 확장시키지는 못한다. 단순하게 말해 1시간에 만들어낼 수 있는 생산물의 양이 2배로 증가한다 한들, 내 삶이 여유로워지기는 커녕 더 팍팍해지기 일쑤이다.
시간은 상대적이라서 하나 하나의 개인들은 각자의 시간을 갖고, 그 시간의 흐름은 일치하지 않는다.(‘상대성 이론’에서도 “퓨쳐 워커”에도 그리 얘기하더라.;;) 그 엇갈린 시간의 흐름을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것은 개별 사물들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연관 속에서,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삶을 통해 생성된다면 삶은 관계 속에 있는 것이다. 시간의 확장이 삶의 확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 쉽게 말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구조에 치명적 문제가 있음을 의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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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1, 2004 @ 02:49:11
와 제가 가지고 있는 모모가 바로 이 책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