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국회에 바라는 것

정확히 말하면 17대 국회에 진출한 민주노동당에 바라는 것이다.

진보 정당의 원내 진출은 누가 뭐래도 역사적인 사건이고 기뻐할 일이다. 그러나 이후 민주노동당이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둘 것인가에 대해서는 조금 걱정스러움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여기서의 걱정은 이제 세상이 빨갱이 천지가 될 것이라느니, 노사분규가 격화되어서 나라가 혼란에 빠질 것이라느니 하는 근거도, 논리도 없는 헛소리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총선 결과는 열린 우리당의 압승이다. 관점에 따라 달리 평가할 수도 있지만, 일단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이후 정국 운영에 아주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개혁을 바라는 사람들의 열망이 – 열린우리당의 정책이나 실체가 어찌되었든 – 열린우리당의 과반 의석 확보라는 결과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개혁이라는 것이 ‘신자유주의 개혁’이라는 데 있다. 이 ‘신자유주의 개혁’은 간단히 말해 자본주의의 효율적 작동을 위해 시장의 각종 제약을 없애고 자본의 활동에 무한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시되는 것은 ‘자본의 효율’이고 뒷전으로 밀려나는 것은 ‘공공 복리’, ‘노동자의 생존권’, ‘서민의 기본권’ 같은 것이다.

이미 김대중 정부 때부터 강행된 공기업 민영화, 경제자유구역법, 노동법 개악과 FTA 자유무역협정, 노동자가 수없이 죽어나가도 립서비스 뿐인 비정규직 문제와 손배가압류 문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파견법 개악, 신노사관계 로드맵 따위를 보라.

이번 총선을 통해 과반 의석을 획득한 열린우리당과 노무현 정부는 이러한 반노동자적, 반민중적 정책을 거침없이 밀고 나가려 할 것이다. 한나라당이야 당리당략이나 목적 달성을 위한 여당 발목 잡기라면 모를까 기본적으로 이러한 정책에 반기를 들 이유가 별로 없다.

이 와중에서 원내에 진출하게 된 진보 정당으로서 노동자, 서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민주노동당의 책임은 막중하나, 과연 그 책임과 역할을 다 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십여 석이라는 의석수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선거를 통해 의석을 획득해야 하는 정당’이기 때문이다. 의석수와 이미지에 연연해서 선거와 의회 활동에 매몰될까, 그렇게 되어 보수 정당들과 보수 언론들의 여론 몰이나 음해 따위에 혹여 주저앉거나 타협의 길을 가지 않을까 매우 걱정스럽다.

이제 첫걸음을 내딛는데 너무 앞서나가 걱정부터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당연히 기쁜 마음으로 축하하고 건투를 빌어야 하겠지만, 한국 사회와 한국 정치판이 그냥 그렇게 순진하게 기대만 하도록 놔두질 않는다.;;

뭐, 그래서 내가 민주노동당에 바라는 것은 민주노동당의 힘은 의석수가 아니라 노동자, 농민, 서민의 삶과 그것에 밀착된 정책과 활동에서 나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럴 때만이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거침없이 ‘삶’을 파괴하려는 시도를 막을 수 있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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