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알고있는 사람도 많겠지만 참세상 방송국에서 마련한 총선에 대한 소통 공간이다. 이번 탄핵 정국과 총선에 관련한 진보 진영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토론에 참여할 수도 있다.
어쨌거나 탄핵은 절차상으로는 적법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이라크 파병이 적법하게 이루어진 것과 마찬가지로… 이는 국민의 의사가 언제든지 적법한 절차를 거쳐 무시될 수 있는 형식 민주주의 자체의 한계를 드러낸 것입니다. 따라서 민주-반민주의 대립 구도를 상정하기에 앞서 ‘어떤 민주주의인가?’가 명확해져야 하겠죠. 개혁-수구의 대립이라면 ‘개혁의 기준’ 또는 ‘개혁의 내용’이 문제가 되겠지요.
헌재의 탄핵 기각 결정이 내려지고, 총선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심판받는다 해도, 그것으로 민중의 고단한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선거에서의 한 표가 모든 정치적 선택을 대신하는 형식 민주주의의 승리와 수구 세력 청산의 반사 이익을 얻을 ‘덜 나쁜 놈들’이 있겠지요.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는 민주주의,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 보장의 구체적 내용을 요구해야 합니다.
경찰 집계로만 광화문에 5만이 모였다고 합니다. 분명히 훨씬 더 모였겠지요. 전국에서 집회가 열렸다고도 합니다. 썩어빠진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얼마나 큰 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한편, 울산에서는 전국에서 몇 시간을 달려와 모인 1만 명의 노동자들이, 한 노동자가 비정규직도 인간이라고 외치며 죽어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집회를 열었습니다.
뉴스에서는 한 마디의 언급조차 없었습니다.;;
저는 다시 한 번 상황의 핵심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탄핵 무효? 부패 정치 척결? 썩은 정치 심판? 그 역시 중요하겠지만 핵심은 아닙니다.
핵심은 바로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입니다.






작년 한 해 동안 FTA, 노동 탄압, 비정규직 차별에 저항하다 목숨을 잃은 노동자, 농민입니다.
어느 언론에서도 진지하게 돌아봐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2004년 1월 산재로 목숨을 잃은 4명의 현대중공업 노동자들과
이틀에 한 명 씩 죽어나가는 건설현장의 노동자들…
여전히 아무도 돌아봐주지 않습니다.
다시 한 번 입장을 명확히 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수구 반동은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물론 국민의 의사를 무시한 정치권은 처절하게 응징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노무현 살리기’, ‘탄핵안 철회’, ‘덜 나쁜놈 밀어주기’에는 관심이 없다. 이번 사태의 결과가 열린우리당에 대한 전폭적 지지로 이어질까 두렵기까지 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민중의 삶을 돌아보지 않고 정쟁에만 매달리고 있는 정치권 전반에 대한 비판이며, 요구해야 할 것은 저들이 무시하고 돌아보지 않았던, 지금도 졸린 눈을 부비며 잔업, 특근을 뛰고 있는 노동자와, 황량한 들판을 바라보며 한숨짓는 농민과, 피곤한 하루를 정리하며 내일을 준비하는 서민들의 생존권일 것이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부패 정치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의 개혁에 대한 열망을 통해 당선되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그런 한에서 그가 한나라당 같은 수구 반동에 의해 끌려내려 오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이번 탄핵안 가결은 국민의 손에 의해 뽑힌 국회의원들에 의해 일단은 나름의 법적 절차를 거쳐 이루어졌다. 이것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가 반영되지 않고, 국민을 현실 정치로부터 괴리시키는 현재의 정치, 사회적 구조의 치명적 문제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결국 지금의 상황을 타개할 해결책 역시 국민들의 정치적 실천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인기 외화 시리즈 CSI를 보면 “CODIS에 조회했더니…” 하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CODIS는 DNA나 지문 따위의 각종 생체 정보를 모아둔 것인데, 재밌는건 드라마에서는 이 CODIS를 조회해도 용의자를 알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나온다는 것이다.
CODIS에 모든 사람의 정보가 있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CODIS에 수록되어 있는 생체 정보는 자진제공자, 신원불명자 또는 유죄가 확정된 범죄자의 것 뿐이다. 알고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부 다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당하고 있는거다.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폭력이 단지 물리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면, 나는 이 단어들이 각자 의미하는 바의 차이와 관계 없이, 일반적으로 성폭력이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폭력의 성립 여부에서 보다 집중해야 할 것은 ‘성’이 아니라 ‘폭력’의 문제이다.
폭력은 자신의 우위를 이용하여 타인의 주체성을 훼손하는 행위이다. ‘성차별’이 현실 사회에 분명히 존재하고 그것이 사회 구성원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기에, 다시 말해 성차별적이고 가부장적인 사회 구조로 인해, 남성의 여성에 대한 폭력은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늘 성적인 우위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일반적인 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고려되는 것은 피해자의 거부 의사나 저항의 정도가 아니라 피해 사실과 정도이다. 가해자의 의도는 정상 참작의 요건은 될 수 있을지언정 폭력 행위 자체의 성립 여부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성폭력의 경우에도 이것은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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