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들의 의도를 넘어서야 합니다.

사진: 인터넷 한겨레

사진: 인터넷 한겨레

울산에 갔다가 조금 전에 집에 도착했습니다.

버스에서 9시 뉴스를 봤습니다.
경찰 집계로만 광화문에 5만이 모였다고 합니다. 분명히 훨씬 더 모였겠지요. 전국에서 집회가 열렸다고도 합니다. 썩어빠진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얼마나 큰 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찬물을 끼얹는 말일지 모르겠지만, 저는 뉴스를 접하면서 심각한 우려를 느꼈습니다.

실제로 광화문에 모인 분들의 생각이 어떠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뉴스에서는 친노-반노, 열린우리당-한나라,민주당의 대립 구도를 그려내고 있더군요. 그리고 역시나 총선과 연계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당장이라도 나라가 망할 것처럼 오도방정을 떠는 정,관계의 반응들을 보여줬죠. 국민들의 자숙을 요청한다느니, 경제 안정을 위해 노사 화합이 중요한 때라느니…

박일수 열사 정신계승 전국 노동자대회한편, 울산에서는 전국에서 몇 시간을 달려와 모인 1만 명의 노동자들이, 한 노동자가 비정규직도 인간이라고 외치며 죽어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집회를 열었습니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폭행과 폭언, 비인간적 모멸에 울분을 삼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찾기 위한 집회였습니다.

뉴스에서는 한 마디의 언급조차 없었습니다.;;

저는 다시 한 번 상황의 핵심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탄핵 무효? 부패 정치 척결? 썩은 정치 심판? 그 역시 중요하겠지만 핵심은 아닙니다.
핵심은 바로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입니다.

저들이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고 민중의 삶을 외면하고 그들의 이익만을 좇아 이번 사태를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국민들의 눈길은 여전히 그들을 향하고 있습니다. (뭐, 아주 부정적인 눈길이긴 하지만…;;) 정치권이, 그리고 언론이 – 저는 다분히 의도적이라고 봅니다 – 국민들의 눈길을 그곳으로 고정시키고 있기도 합니다. 그 와중에 비명을 지르는 것은 외면받는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입니다.

지금 상황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열린우리당도 아니고, 노무현 대통령도 아닙니다. 탄핵안 가결로 크나큰 배신감을 느껴서 광화문으로 모이신 여러분일 수 있지만 그 또한 정확한 표현은 아닙니다.

FTA 비준으로 개방은 코 앞인데 설해 복구 지원은 끊겨버린 힘없는 농민들, 비인간적인 대우를 참을 수 없어 죽음으로 항거하는 노동자들, 아무리 처절하게 비명을 질러도 관심조차 받지 못하는 기층 민중들이야말로 가장 큰 피해자입니다.

짐작컨대 광화문에 모인 분들이 가진 생각은 여러 가지였을겁니다. ‘노사모’가 대부분일거라는 황당한 얘기를 믿을 사람은 없겠지요. 그러나 지금의 분위기로 계속 간다면 여러분의 생각이 무엇이든 반사 이익을 얻을 자들은 ‘덜 나쁜 놈들’ 뿐입니다. 국민의 정치적 실천을 투표 용지 한 장으로, 국민의 정치적 선택을 그 잘난 종이쪼가리 속의 선택지로 한정지으려는 자들이 광화문에 모인 여러분의 성과를 모조리 가로채갈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은 내팽겨쳐져 있을 겁니다.

광화문에 모인, 또는 각자의 영역에서 이루어진 여러분의 정치적 실천은 매우 의미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저들의 의도대로 이용되게 두어서는 안 됩니다. ‘민주주의 수호’, ‘부패정치 척결’… 이런 것들이 보다 제대로 된 세상을 위한 것이라면, 저들의 저열한 의도를 넘어서 고통받는 민중들의 삶에 눈길을 돌리는 것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광화문으로? 울산으로! 서울역으로!

배달호 열사이경해 열사김주익 열사
이해남 열사이용석 열사이현중 열사

두산중공업 배달호 2003.1.9
세원테크 이현중 2003.8.26
농민 이경해 2003.9.11
대한화섬 박동준 2003.9.27
한진중공업 김주익 2003.10.17
세원테크 이해남 2003.10.23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이용석 2003.10.26
한진중공업 곽재규 2003.10.30

뭔지 아시겠지요? 한 번 쯤은 이름을 들어보셨겠지요?
작년 한 해 동안 FTA, 노동 탄압, 비정규직 차별에 저항하다 목숨을 잃은 노동자, 농민입니다.

어느 언론에서도 진지하게 돌아봐주지 않았습니다.
격렬하고 과격하게 집회를 해야 겨우 눈길을 주더군요.
‘과격 폭력 시위 부활’, ‘화염병 재등장’이라고요…;;

박일수 열사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박일수 2004.2.14
현대중공업 유석상 2004.2.14
현대중공업 유재순 2004.3.9

그리고 2004년 1월 산재로 목숨을 잃은 4명의 현대중공업 노동자들과
이틀에 한 명 씩 죽어나가는 건설현장의 노동자들…

여전히 아무도 돌아봐주지 않습니다.

많은 분들이 여의도 혹은 광화문에 모이시겠지요.
수구 반동을 몰아내고, 부정 부패를 척결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이 땅의 민주주의를 회복(?)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이미 빼앗긴 노동자의 권리를 되찾을 수는 없습니다.
농민의 한숨을 지울 수 없습니다.
서민의 억울함을 풀 수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저는 오늘 울산으로, 내일 서울역으로 가겠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십시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습니다.

(영정을 모두 구하지 못해 일부만 올렸습니다.)